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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의 존 스튜어트 밀의 생애~
존 스튜어트 밀은 1806년 5월 20일 영국의 미들섹스 주 펜턴빌 로드니가 13번지에서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이며 역사학자이며 경제학자였던 제임스 밀(1773~1836)과 헤리엇 버로우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주 어릴때부터 그가 자기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철저하게 차단하고서 제레미 벤담(1748~1832)과 프랜시스플레이스(1771~1854)의 조언과 도움을 받아 밀에게 극도로 엄격한 교육을 시켰다.
밀은 3세 때부터 그리스어를 배워서 8살 때에는 이미 이솝우화는 물론이고 해로도토스와 플라톤의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고 영어로 된 많은 역사서를 읽었으며 대수학과 물리학과 천문학을 배웠다.
8세부터는 라틴어를 배워서 오비디우스, 투키디데스, 등과 같은 라틴어 고전들도 읽었는 데, 10살 무렵에는 플라톤과 데모스 테니스의 저작 등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여가 시간에는 자연 과학에 관한 책들과 “돈키호테”나 “ 로빈슨 크루소”같은 대중 소설을 읽기도 했다.
12살 부터는 스콜라 철학의 논리학을 공부했으며, 아리스토 텔레스의 논리학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다. 13살 때는 애덤 스미스(1723~1790)와 데이비드 리카도(1772~1823)등의 저작들을 통해 정치 경제학을 공부했다
아버지의 친한 친구였던 리카도는 어린 밀을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함께 산책하며 정치 경제학에 관한 대화를 나누곤 했다.
14살 때는 제러미 벤담의 동생인 새뮤얼 벤담(1757~1831)의 가족과 함께 프랑스에서 1년을 지내면서 몽펠리에 대학에서 화학, 동물학, 논리학, 고등 수학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프랑스를 오가며 파리에 있을 때에는 아버지의 친구였던 경제학자 “장 밥티스트 세(1767~1832)”의 집에 머무면서 사회주의 사회개혁가인 “생 시몽(1760~1825)과 많은 정계 인사들을 만났다. 그리고 “오귀스트 콩트(1798~1857)”와는 서신을 통해 교류하였는 데, 나중에는 그를 제정적으로 후원하기도 했다.
17세 때인 1823년에는 아버지가 재직하고 있던 영국 동인도 회사에 입사했다. 특히 24세살 때인 1830년에 해리엇 테일러(1807~1858)를 만나 교제하게 된 것은 그가 정신적인 안정을 되찾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테일러는 유부녀로서 남편인 존 테일러와 함께 자유주의적인 유니 테리언 주의 활동을 하면서 급진적인 정치 사상을 토대로 여성의 참정권 운동을 벌인 여성이었다.
밀은 헤리엇 테일러와 오랫동안 지적인 교류를 하며 친밀하게 지내다가 남편이 죽자 그녀와 교제한지 21년 만에 1851년에 그녀와 결혼했다. 탁월한 능력을 지닌 여성이었던 테일러는 밀과 처음으로 만난 이후에 계속해서 밀의 사상과 저작에 상당히 영향을 미쳤다.
“자유론(1859년)과 여성의 종속(1869)” 같은 저작들은 테일러의 직접 적인 영향으로 저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테일러는 결혼한지 8년도 채 되지않은 1858년에 밀과 함께 프랑스를 여행하다가 아비뇽에서 폐혈로(폐출혈) 사망했다. 밀은 그녀가 죽은 직후에 출간한 “자유론”의 최종적인 개정본에서 책의 서두에 자신에 대한 그녀의 영향력이 어떠했는지 감동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관념론~
~19세기 유럽에서는 철학 부분에서 독일의 칸트(1724~1804)와 헤겔(1770~1831)의 관념론~
“관념론은 실체 혹은 우리가 알수 있는 실체는 근본적으로 정신적으로 구성 되었거나, 혹은 비물질 적이라고 주장하는 철학적 입장이다.
“인식론”에서 관념론은 정신으로 부터독립된 것을 인식할 가능성에 대한 회의로 나타난다.
특히 믿음과 가치가 사회를 어떻게 형성하는지에 주안점을 둔다.
존재론적 교의로서 관념론은 더 나아가 모든 것은 마음이나 정신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관념론은 “모든 것은 물질적으로 실제한다”고 보는 물리주의나, 물리적 실체와 정신적 실체를 분리하여 파악하는 “이원론”의 주장은 모두 배척한다.
~~관념론은 다음과 같은 철학적 입장들과 종종 비교되곤 한다.~~
~유물론: “오직 물질만 존재한다”
~심신 이원론: 물질과 정신이 둘다 존재한다.
~실재론: “나 바깥에 객관적인 실체가 있다
~유아론” “나 바깥에 객관적인 실체가 없다.
그러나 :관념론”이라는 명칭은 철학자들 마다 서로 미묘하게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는 하기에 주의가 요구된다. 당장 “관념론은 실재론과 반대다” 라는 명제를 받아들일 경우 역사적으로 “관념론자”로 불릴 여러 철학자들을 더 이상 관념자론라고 분류할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