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뱅주의 이론 | 상식의 글집

칼뱅주의 이론

 ~칼뱅주의 이론~


칼뱅의 이론에서는 자신의 의지보다 복종을 우선시하는 상태를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가장 큰 죄악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반대로 인간이 행할 수 있는 모든 선은 오직 복종 속에 들어 있다. 인간에게는 다른 선택권이 없으며, 오직 복종해야 할 뿐 다른 길은 없다. “인간에게 의무로 주어진 일을 행하는 것 외의 모든 행동은 죄이다.” 또한 인간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부패했기에, 자신 안에 있는 인간적 본성을 죽이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구원은 없다고 말한다.

인간과 인간의 삶에 대한 이런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인간의 능력과 소질의 감수성을 박멸해 버리는 것은 해로운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을 신의 의지에 맡기는 능력 외에는 다른 능력들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신의 의지를 행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기보다는, 차라리 그런 능력이 없는 편이 낫다는 것이 바로 “칼뱅주의 이론”이다. 스스로를 칼뱅주의자라고 부르지 않는 이들 중에도 이런 이론을 온건한 형태로 신봉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여기서 온건한 형태란, 신의 뜻을 극단적으로 금욕적으로만 해석하지 않고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어느 정도 충족하는 것 역시 신의 뜻이라고 본다는 의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권위를 지닌 기관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정한 조건과 틀에 따라 복종하는 방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인간의 삶에 대한 이러한 편협한 관점과,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억눌리고 폐쇄적인 인간상을 지향하는 경향은 오늘날에도 매우 은밀하고 교묘하게 존재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자란 나무를 그대로 두기보다 가지치기를 통해 단정하게 다듬거나 인위적인 모양으로 만드는 것을 더 세련되다고 여기듯, 신의 뜻에 따라 인간의 본성을 억누르고 재단한 위축된 인간상이이야말로 창조주가 원하는 진정한 모습이라고 믿곤 한다.

하지만 선한 창조주를 믿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라면, 창조주는 자기가 만든 인간의 모든 능력이 말살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개화되고 적극적으로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믿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한 피조물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지적·실천적 능력을 발전시켜 이상적인 모습에 가까워질 때 창조주의 기쁨도 더 커진다고 보는 것이 신앙의 본래 취지에 더 부합한다.


타인의 권리와 이익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개성을 고귀하고 아름답게 발전시켜 나간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한층 더 풍요롭고 다양하며 활기차게 변할 것이다. 개개인이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발현할 때 사회 전체에 고상한 생각과 유대감이 차오르게 되며, 개인과 공동체 모두의 삶이 만개할 수 있다. 오늘도 건강하고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언제나 부족함 없이 필요한 지혜와 요소를 채워주는 무한한 지성에 감사드린다.


~독창성의 기여~

자신의 본성과 개성을 발전시킨 선구자들로부터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독창성이 인간의 삶에서 매우 가치 있는 요소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새로운 진리를 발견해 기존의 통념을 깨뜨리는 사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에 더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먼저 시도하고, 더 발전된 행동과 품격의 모범을 제시하는 선구자들도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가 이미 완벽한 상태에 도달했다고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러한 독창적 선구자들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구자 역할을 수행하며 인류에 기여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여 다른 이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이끄는 인물은 전체 인류 중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 극소수의 독창적인 사람들은 세상의 “소금”과 같다. 이들이 없다면 인간의 삶은 활력을 잃고 고인 물처럼 썩어가고 말 것이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가치를 들여오고, 기존의 것들이 계속해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이들이 바로 이들이다.


전 세계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이 인류의 가운데 떠오르는 권력이 되고 있는 것이 일반적으로 엄연한 사실입니다. 이 시대의 권력이라고 불릴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대중”의 권력이다.

정부의 권력도 존재하긴 하지만, 정부는 이미 대중이 원하는 것들을 따라가는 기관이 되여 있다.

공적인 분야만 아니라, 개개인의 사적인 삶과 관련된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관계들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대중이지만, 그 대중의 실체가 언제나 동일한 것은 아니다.


나의 단상

모두가 똑같은 틀 속에 자신을 맞추며 살아가는 획일적인 삶 속에서는 진정한 삶의 온기와 숨결을 느끼기 어렵다. 칼뱅주의가 요구했던 엄격한 복종과 본성의 억압은 우리 안의 다채로운 색채를 지워버리고, 세상을 단조롭고 정적인 공간으로 만든다. 그러나 각자가 지닌 고유한 개성과 독창성이 꽃피울 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

타인의 시선이나 거대한 대중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삶은 참으로 아름답다. 나만의 결을 따라 살아가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모여 우리 사회를 한층 더 풍요롭고 깊이 있게 만든다. 틀에 매이지 않는自由로운 영혼들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할 때, 비로소 세상은 각기 다른 빛깔로 찬란하게 빛나는 축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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